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 독립 전쟁/등장인물 (문단 편집) == 독일 == * '''[[아돌프 히틀러]]''' [[폴란드 침공]] 전까지는 원 역사대로의 행보를 보이며, 조선이 유대인들을 데려가는 것에 신경질을 부리고 아예 [[환빠|조선이 단 지파의 후손이라고 생각하여 유대-조선이라고 부른다.]] 영국에서 웨스트민스터 조약 적용을 확대하기로 하자 이전부터 영국에 대해서는 비교적 호의가 있던 히틀러가 제국이 저무는 것에 비애감을 느끼며 폴란드 침공을 미뤘는데, 이때 검은 오케스트라의 암살 모의가 더 일찍 진행되어[* 이렇게 된데에는 밥 먹듯이 외교적 약속을 어겨대는 히틀러를 제거하길 바라던 영국과 프랑스의 사주가 있는 것으로 언급된다.] 1939년 9월 20일 검은 오케스트라에 의해 히로히토와 같은 수법으로 '''폭사'''당한다. 역설적으로 2차 대전을 일으키지도 못한 체 [[안슐루스]]와 베르사유 조약 파기로 영토 확장과 군비 증강만 성공하고 사망한지라 작중에서는 [[박수칠 때 떠나라|박수칠 때 쫓겨난]] 불세출의 외교천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홀로코스트]]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훗날에도 당시 유럽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자 정도로 평가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를 해치지 않아서인지 [[수카르노]]도 뮌헨 [[맥주홀 폭동]]을 따라한 집회를 가졌다. * 사실 세세히 따지자면 히틀러가 2차 대전 이전에 시작한 악행에는 [[T4 작전]]도 있지만, 당시 미국을 포함한 열강들도 비슷한 종류의 우생학 정책을 펴던 시기라 물타기가 가능하다(...). 오히려 T4 작전이 당시 미국의 우생학 정책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스스로를 변호한 몇몇 나치 전범들이 사형을 면하기 직전에 이를 정도였다. * '''[[헤르만 괴링]]''' 히틀러 암살 사건 후 독일국 법령에 의거하여 히틀러의 뒤를 이은 퓌러 겸 국가수상의 자리에 오른다.[* 정확히는 당시 나치 독일에는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퓌러 자리와 독일국 퓌러 겸 국가수상 자리가 있었는데, 히틀러가 두개 모두 겸직하다 전자를 총통 대리였던 [[루돌프 헤스]]가 맡게 되고 후자를 괴링이 맡게 된다.] 원 역사처럼 모르핀 중독자 신세였으나, 히틀러 암살 사건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느껴서 정신 차리고 '''약을 끊었다.'''[* 대신 군부의 반란을 제압하고 총통직에 오른 뒤에 국민들과 수하들에게 숭배받는다는 '''권력뽕'''에 취해버렸다(...). 나치 독일의 경례 구호도 '''하일 괴링'''으로 바뀐 건 덤.] 한편 다른 나치당 인사들 사이에서는 인망이 없어서 괴벨스[* 특히 괴벨스는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괴링을 엄청나게 싫어했다.]와 SS는 둘 다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내심 그나마 인성만은 좋던 헤스를 약간 더 지지하는 상황. 그러나 권좌에 오른 후에는 엄청나게 유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괴링도 전범재판 과정에서 약을 끊자 능수능란하게 자신과 다른 전범들을 변호했다.] 히틀러 폭사 이후 헤스와의 만남에서도 헤스가 경계했던 것과 달리 관료들을 불러서 무리한 군비 확장으로 독일 경제가 파산 직전인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하고,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를 통해 폴란드를 침공하는 대신 협상을 제안하고, 소련 극동관구에 트로츠키가 돌아왔다는 영국이 넘겨준 정보를 흘려서 소련의 내란을 틈타 소련 서부를 노리라고 충동하는 대신 단치히를 돌려받고 군수물자를 수출해서 독일 경제를 회복시킨다. [[통수|그 후 소련의 내란이 끝나고 폴란드가 위기에 처하자 버리면서]], '''고토를 수복하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무리한 침략전쟁을 일으킨 폴란드를 경제적, 외교적으로 궁지에 몰아넣는''' 놀라운 외교적 승리를 거둔다. 경제 회복 이후 지지도도 올라갔고, 1차 대전 영웅이라는 타이틀로 군부를 찍어눌러서 군축을 감행하며, 만주국과 접촉해서 유대인들을 전부 보내주기로 약속하는 등 원 역사와 비할 바 없이 건실하게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후 영국과 동맹을 맺고, 식민지에서 문제가 터져나오면서 도움을 요청 받자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서 거부하는 등 독자들에게 '''[[비스마르크|괴스마르크]]'''라고 불리고 있다. 거기에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는 것도 단순히 열강을 약화시키고 전쟁 특수를 노리는 것 이상을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백인의 의무]] 같은 기만으로 식민지 착취에만 의존하다 미국의 경제 압박에 몰락할바엔 [[유럽연합|제국주의를 때려치우고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이 하나로 뭉쳐]] 미국에 대항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알베르트 괴링]]''' 주중독일대사로 등장. 나치즘을 부정적으로 여기는건 현실과 똑같지만, 형 헤르만 괴링이 유태인 정책을 만주국 이주 지원으로 전환하자 조금만 고생하면 독일이 정상화 될 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식으로 합리화한다. 장제스에게 인도차이나 반도 해방을 도와줄 것을 요구한다. * '''[[루돌프 헤스]]''' 히틀러 암살사건 후 히틀러의 뒤를 이은 나치당 퓌러[* 사실상 당대표 자리로, 본래 히틀러는 나치당의 퓌러, 독일의 퓌러 겸 국가수상 두 직책을 겸임했다.]의 자리에 오른다. 여담으로 헤스 게이설을 채택했는지 헤스 시점에서 히틀러를 '''사랑해 마지않는 반쪽'''이라고 칭하고 있다. * '''[[파울 요제프 괴벨스]]''' 히틀러의 사망 직후 큰 충격에 빠지지만, 선동가 기질은 어디 안 가는지 곧바로 히틀러의 죽음을 예수의 십자가형에 비유하며 치켜세운다. 한편 새 지도자들인 괴링과 헤스를 각각 모르핀 돼지, 허수아비로 부르며 둘 다 못미더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괴링의 권력이 반석에 오른 뒤에도 삐딱한 태도를 보일 정도. 다만 사적인 불호와는 별개로, 국가를 위해서든 당을 위해서든 괴링이든 괴벨스 둘 다 서로가 필요한 사이였기에 사무적이다못해 적대적인 협력관계를 지속한다. * '''[[하인리히 힘러]]''' 히틀러 암살 사건 직후 괴벨스의 병문안을 오면서 등장. 히틀러를 경호해야 했던 SS가 암살을 막는 데 실패하여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거란 언급이 나온다. *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 독일의 전 외무장관. 괴링의 부름을 받고 외교업무로 복귀하고 폴란드와의 협상을 성사시킨다. * '''[[빌헬름 카이텔]]''' 암살사건 직후 내부 정리를 위해 각 군부대에게 충성 맹세를 받고 있다고 언급된다. * '''헤르베르트 폰 디르크젠''' 원역사에선 [[트라우트만 공작]]에 참여했던 주일 독일대사. 히틀러의 지시로 일본 외무대신 마치다 츠지에게 방공동맹을 제안하나 서로 외교적 모욕[* 헤르베르트는 식민지 조선도 제대로 간수 못하면서 소련과 중화민국을 상대할수 있겠냐며 미국과 손잡지 말고 자기들과 손 잡으라는 식으로 나오고 마치다는 이에 맞서 자기들은 1차 대전의 승전국이라며 패전국인 독일과 손잡을 생각 없다는 식으로 역으로 도발해버린다.]만 퍼붓고는 결렬된다.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베리야가 독일로의 망명을 위해 이전에 만들어 놓은 커넥션으로 접촉하지만, 약속했던것과 달리 베리야를 손절하고는 조롱하며 무시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